국가보훈부 기록
최도환
崔道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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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 요약
최도환(崔道煥)은 국가보훈부 독립유공자 공적조서에서 의병 계열로 확인됩니다. 1968년 독립장 포상 기록이 확인됩니다. 공훈 관리번호는 10455입니다.
친일맵 인물 ID P0086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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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훈 기록
국가보훈부 독립유공자 공적조서와 관리번호로 연결한 공식 기록입니다.
- 관리번호
- 10455
- 운동계열
- 의병
- 포상
- 1968 · 독립장
- 본적
- 강원도 · 화천 · 德洞
- 이명
- 崔君心
- 생년월일
- 1851-04-04
- 사망일
- 1911-08-02
1. 1906년에 기의(起義)하다 원래(元來) 옹기점(甕器店) 보부상 반수(褓負商班首)로 그 조직(組織)을 이용(利用)한 듯 하다. (항일순국의열사전(抗日殉國義烈士傳) p.353) 2. 1907년 이후(以後) 강원도(水原道) 경기도(京畿道) 등지(等地)에서 활약(活躍) 의병장(義兵將)로서의 용명(勇名)을 떨치었으므로 폭도편책(暴徒編冊) 도처에 그 이름이 보인다. 1907년 말(末)에는 한때 부하(部下) 200명(名)에 달(達)하였으나 그 후 차차 줄어 100명(名) 선(線)으로 떨어진 듯 하다. (폭도편책(暴徒編冊) 38호(號), 19호(號), 137호(號)) 3. 1907년 12월 22일 최도환(崔道煥)의 부하(部下) 박래수(朴來守)의 신문조서(訊問調書)에 의(依)하면 당시(當時)의 장비 무기(裝備武器) 일본총(日本銃) 3정(挺) 화승총(火繩銃) 40정(挺)이 있었다 하며 박래수(朴來守)가 처음 의병부대(義兵部隊)에 들어갔을 때 대장(大將) 최도환(崔道煥)은 그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한다. “우리는 나라를 위하여 몸을 바치고 있 다. 왜 빨리 와서 우리와 같이 일해 주지 않았는가”, “일본인(日本人)이 다수(多數) 우리나라로 오 지 못하도록 막는 것이 나라를 위한 행동(行動)인 것이다.” (폭도편책(暴徒編冊) 금비발(金秘發) 제173호(號) 융희 원년(隆熙元年) 12월 23일) 4. 패전(敗戰) 후(後) 5년간(年間) 심복 동지(心腹同志)와 벽곡(僻谷)에서 은거(隱居)(한국독립운동사(韓國獨立運動史) p.63) 한때 간도(間島)에서 의병(義兵)을 모집(募集) 재기(再起)를 꾀하다. (매천야록(梅泉野錄) p.491) 5. 1911년 춘천감옥(春川監獄)에 수감(收監) 중 순사(殉死) (항일순국의열사전(抗日殉國義烈師傳) p.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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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관 기록
독립유공자
건국훈장 · 독립장
수록 정보 · 관리번호 10455 · 포상년도 1968
분류 출처 · 국가보훈부 독립유공자 명단_2026072204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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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훈부 독립유공자 명단_20260722
관리번호, 성명, 생몰일, 본적, 운동계열, 포상년도와 훈격을 제공하는 공식 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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