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보훈부 기록
김상옥
金相玉
01
기록 요약
김상옥(金相玉)은 국가보훈부 독립유공자 공적조서에서 의열투쟁 계열로 확인됩니다. 1962년 대통령장 포상 기록이 확인됩니다. 공훈 관리번호는 669입니다.
친일맵 인물 ID P00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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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공훈 기록
국가보훈부 독립유공자 공적조서와 관리번호로 연결한 공식 기록입니다.
- 관리번호
- 669
- 운동계열
- 의열투쟁
- 포상
- 1962 · 대통령장
- 본적
- 서울 · 서울 · 동대문구 어의동
- 생년월일
- 1889-01-05
- 사망일
- 1923-01-22
1. 독실한 예수교 신도로서 동흥야학교(東興夜學校)를 설립하고 극빈자의 자제를 교육함 2. 21세에 영어학교에 입학 23세에 철물점을 개업하고 5, 6년후에 일화(日貨) 배척의 목적으로 말총모자를 창제(創製)함 3. 1919년 4월 혁신단(革新團)을 조직하고 혁신공보(革新公報)를 발행함 4. 동년(同年) 12월 암살단(暗殺團)을 조직하고 총독 및 왜인 고관 암살(倭人高官暗殺)을 계획함. 5. 1920년 8월 24일 한만석(韓萬錫), 김동순(金東淳)과 미국의원(美國議員) 40명의 내한(來韓)을 계기로 왜 고관 암살(倭高官暗殺)을 꾀하다가 동지(同志)들의 피체(被逮)로 실패. 6. 동년(同年) 10월 상해(上海)에 건너가 김구(金九), 이시영(李始榮)등과 거사를 계획함. 7. 1921년 7월 초순(初旬) 귀국하여 임정 원조금(臨政援助金)을 모금하여 다시 상해에 건너감 8. 1921년 12월 귀국 입경(歸國入京) 1923년 1월 12일 종로경찰서에 투탄(投彈)하고 피신중 한인 순사(韓人巡査) 조용수의 밀고(密告)로 동일(同日)오후 3시 왜경(倭警) 수백명에게 포위되었으나 형사부장(刑事部長) 전촌(田村)을 즉사(卽死)시키고 남산(南山)에 올라 형사대(刑事隊)와 항전(抗戰) 이때 군대(軍隊)까지 동원시켰으니 이것이 삼판동 사건(事件)임 9. 그후 왕십리(往十里) 안접사에 은신하였다가 수사망(搜査網)의 압축으로 효제동(孝悌洞)에 피신하였고 동월(同月) 22일 오전 5시반 1천여명의 왜경(倭警)과 3시간에 걸쳐 교전(交戰)하였으며 율전경부(栗田警部)이하 일경(日警) 수명(數名)을 살상(殺傷)하고 탄환(彈丸)이 떨어져 마지막 일발(一發)로 자결하였음 시체(屍體)는 양주산에 이장(移葬)함.
03
기관 기록
독립유공자
건국훈장 · 대통령장
수록 정보 · 관리번호 669 · 포상년도 1962
분류 출처 · 국가보훈부 독립유공자 명단_2026072204
출처
분류의 원출처와 데이터를 전달한 공개 자료를 구분해 표시합니다.
국가보훈부 독립유공자 명단_20260722
관리번호, 성명, 생몰일, 본적, 운동계열, 포상년도와 훈격을 제공하는 공식 명단
공개 원문 보기 ↗국가보훈부 독립유공자 공적조서 OPEN API
관리번호별 한자명·이명·생몰일·포상정보·운동계열·공적개요를 제공하는 공식 AP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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