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보훈부 기록
이관용
李灌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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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 요약
이관용(李灌鎔)은 국가보훈부 독립유공자 공적조서에서 국내항일 계열로 확인됩니다. 2008년 애국장 포상 기록이 확인됩니다. 공훈 관리번호는 41885입니다.
친일맵 인물 ID P011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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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훈 기록
국가보훈부 독립유공자 공적조서와 관리번호로 연결한 공식 기록입니다.
- 관리번호
- 41885
- 운동계열
- 국내항일
- 포상
- 2008 · 애국장
- 본적
- 경기도 · 경성 · 鐘路 6丁目 13-3
- 이명
- 李灌溶, 李瓘鎔, 李鑵鎔
- 생년월일
- 1891-07-15
- 사망일
- 1933-08-13
1919년 4월 임시정부 파리위원부 부위원장(副委員長)이 되어 동년(同年) 7월 17일 국제사회주의자회의에 조소앙과 한국사회당 대표로 참석하여 ‘한국독립승인요구안’을 제출하였고, 이후 8월부터 파리위원부 위원장대리(委員長代理)로 활동하다 10월 10일에 사임하고, 1920년 1월 대한적십자사(大韓赤十字社) 구주지부장(歐洲支部長)으로 스위스의 국제적십자회(國際赤十字會)에 참석하여 일본정부 적십자사(赤十字社)에 대한 항의서(抗議書)를 제출하였고, 동년(同年) 10월 12일 ‘국제연맹옹호회 연합대회’에 참석하였으며, 1923년 2월 스위스 취리히 대학에서 박사학위 취득 후 한국에 돌아와 활동 중 1924년 3월 1일 소년척후단 조선총연맹 발기회(少年斥候團朝鮮總聯盟發起會) 이사로 선임되었고, 동년(同年) 10월 조선기근구제회(朝鮮饑饉救濟會)의 집행위원이 되었으며, 1925년 3월부터 동아일보 특파원으로 러시아, 유럽에서 취재활동을 하였고, 1927년 1월 19일 신간회 발기인으로 참여하여 동회(同會) 간사로 활동하다가 1929년 10월 광주학생사건과 관련해 신간회 간부들과 동년(同年) 12월 일제관헌을 규탄하는 민중대회를 개최코자 결의문 배포 등의 활동을 전개하다가 체포되어 징역 1년 6월을 받고 1932년 1월 22일 가출옥되었으며, 1933년 8월 14일 함북(咸北) 청진(淸津)에서 익사한 사실이 확인됨.
03
기관 기록
독립유공자
건국훈장 · 애국장
수록 정보 · 관리번호 41885 · 포상년도 2008
분류 출처 · 국가보훈부 독립유공자 명단_2026072204
출처
분류의 원출처와 데이터를 전달한 공개 자료를 구분해 표시합니다.
국가보훈부 독립유공자 명단_20260722
관리번호, 성명, 생몰일, 본적, 운동계열, 포상년도와 훈격을 제공하는 공식 명단
공개 원문 보기 ↗국가보훈부 독립유공자 공적조서 OPEN API
관리번호별 한자명·이명·생몰일·포상정보·운동계열·공적개요를 제공하는 공식 AP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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