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보훈부 기록
이승만
李承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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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 요약
이승만(李承晩)은 국가보훈부 독립유공자 공적조서에서 임시정부 계열로 확인됩니다. 1949년 대한민국장 포상 기록이 확인됩니다. 공훈 관리번호는 4987입니다.
친일맵 인물 ID P004619
02
공훈 기록
국가보훈부 독립유공자 공적조서와 관리번호로 연결한 공식 기록입니다.
- 관리번호
- 4987
- 운동계열
- 임시정부
- 포상
- 1949 · 대한민국장
- 본적
- 황해도 · 평산 · 陵內洞
- 이명
- 李承龍, 一秀(雅號), 雩南(號)
- 생년월일
- 1875-03-26
- 사망일
- 1965-07-19
1896년 서울에서 협성회(協成會)를 조직하였으며, 협성회보(協成會報)와 매일신문(每日新聞) 주필로 활동하였다. 독립협회(獨立協會)에서 독립민권사상을 고취하고 1898년 내각 중심제 정부를 조직하고 고종 황제를 양위시키려는 계획에 가담했다 징역 7년형을 언도받았다. 감옥에서 독립 정신(獨立精神) 등을 저술하고 1904년 8월까지 5년 6개월 이상의 옥고를 치렀다. 1905년부터 미국에서 워싱턴대학 학사, 하버드대학 석사, 프린스턴대학 박사를 취득하고 1910년에 귀국하였다. 1910년 서울에서 황성기독청년회 학감 등으로 활동했다. 1913년 미국 하와이에서 한인중앙학원을 인수 운영하면서 태평양잡지를 창간했다. 1918년 12월 대한인국민회로부터 파리강화회의 한국대표로 임명되었으나 미국 국무성으로부터 여행권을 발급받지 못해 참석하지는 못했다. 1919년 4월 상해에서 조직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대통령으로 추대되었다. 1919년 4월 필라델피아에서 한인대표자대회를 소집하여 독립방략을 논의하고 독립의지를 세계여론에 호소했다. 동년 8월 워싱턴에 구미위원부를 설치해 외교운동과 독립자금을 모집했다. 1921년 5월 워싱턴 군축회의에서 임시정부 전권대사로 한국 독립문제를 의제를 상정시키려는 외교활동을 했다. 1924년 호놀룰루에서 조직된 대한인동지회의 종신총재로 추대되었다. 1925년 임시정부로부터 임시대통령직에서 면직되었다. 1933년 제네바 국제연맹회의에 참석하여 한국 독립문제를 환기시켰다. 1941년 12월 일본의 진주만 공격으로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자 임시정부 구미위원장으로 미국 대통령과 국무성을 상대로 임시정부 승인을 요구하는 외교활동을 벌였다. 1945년 4월 샌프란시스코에서 개최된 국제연합 창립총회에서 한국대표단 단장으로 임정 대표의 참석을 요구하는 외교활동을 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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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관 기록
독립유공자
건국훈장 · 대한민국장
수록 정보 · 관리번호 4987 · 포상년도 1949
분류 출처 · 국가보훈부 독립유공자 명단_2026072204
출처
분류의 원출처와 데이터를 전달한 공개 자료를 구분해 표시합니다.
국가보훈부 독립유공자 명단_20260722
관리번호, 성명, 생몰일, 본적, 운동계열, 포상년도와 훈격을 제공하는 공식 명단
공개 원문 보기 ↗국가보훈부 독립유공자 공적조서 OPEN API
관리번호별 한자명·이명·생몰일·포상정보·운동계열·공적개요를 제공하는 공식 AP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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