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보훈부 기록
조응순
趙應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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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 요약
조응순(趙應順)은 국가보훈부 독립유공자 공적조서에서 만주방면 계열로 확인됩니다. 2017년 독립장 포상 기록이 확인됩니다. 공훈 관리번호는 72717입니다.
친일맵 인물 ID P013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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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훈 기록
국가보훈부 독립유공자 공적조서와 관리번호로 연결한 공식 기록입니다.
- 관리번호
- 72717
- 운동계열
- 만주방면
- 포상
- 2017 · 독립장
- 본적
- 함경남도 · 갑산 · 회사 도화
- 이명
- 王大方, 五周, 金閱, 趙一飛, 趙廷奎
- 생년월일
- 1885-12-04
- 사망일
- 미상
1908년 5월 노령(露領)에서 전제익 의진(全濟益義陣)에 입대 후 부하 300여 명을 이끌고 함북(咸北) 회령군(會寧郡)으로 진격해 일본군과 교전하였으며, 1909년 노령(露領) 연해주(沿海州) 연추(煙秋) 근교에서 안중근(安重根) 등과 함께 단지동맹(斷指同盟)을 결성함. 이후 연해주(沿海州) 일대의 70여 곳에서 학교 설립에 관여하고, 1910년 6월 국민회(國民會) 수청신영지방회(水淸新英地方會) 평의원(評議員)으로 활동했으며, 1914년 6월경 수청(水淸)에서 합성학교 설립에 관여하고, 동월(同月) 연추(煙秋)에서 이범윤(李範允)·최재형(崔才亨) 등과 함께 독립운동에 관해 협의함. 1917년 재중일본공사 임권조(林權助)에 대한 참간장(斬奸狀)을 제출하고 처단 실행자로 활동했으며, 1918년 예카테린부르크에서 국민회(國民會)를 조직한 뒤 김알렉산드라와 협의하여 노동회(勞動會)로 변경했고, 1919년경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한국독립단(韓國獨立團) 결성 후 부단장(副團長)으로 국내로 진격해 일본 관헌을 공격했으며, 1920년 12월 치타에서 고려공산당(高麗共産黨) 동아한인부(東亞韓人部)를 결성해 위원(委員)으로 활동함. 1921년 9월 합이빈(哈爾賓)에서 한국의용군(韓國義勇軍) 결사대(決死隊) 결성 후 대장(隊長)으로 동지 규합 및 대한민국임시정부(大韓民國臨時政府)의 군자금 모집 활동에 협력하고, 1920년 11월 상해(上海)에서 임시정부측(臨時政府側)과 독립운동에 관해 협의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 1922년 체포되어 징역 3년을 받았으며, 1926년 수청(水淸) 신영동(新英洞)에서 야학교 교사로 활동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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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관 기록
독립유공자
건국훈장 · 독립장
수록 정보 · 관리번호 72717 · 포상년도 2017
분류 출처 · 국가보훈부 독립유공자 명단_2026072204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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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훈부 독립유공자 명단_20260722
관리번호, 성명, 생몰일, 본적, 운동계열, 포상년도와 훈격을 제공하는 공식 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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